<커크술루> 센티넬버스au 


 “의뢰하러 왔어요.”


 그리 말하는 그는 웃는 낯이었다.



* * *



 술루가 맞이하는 이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긴장한 얼굴. 우울한 얼굴. 아예 눈물범벅이 된 낯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를 찾아오는 목적이 목적이니 만큼 그것은 당연했다. 행복한 사람은 이런 곳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술루는 밝은 표정의 손님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탁한 금발, 파란 눈. 몸에 잘 맞는 고급진 옷. 그리고 시원한 웃음을 건 얼굴. 술루는 그가 이질적이라고 느꼈다.


 “듣던 대로네.”


 서류를 꺼내는데 그가 꺼낸 말이었다. 혼잣말인가 싶지만 그리 작은 소리는 아니다. 술루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유명하잖아요, 당신.”


 소파에 앉은 그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마 내 손님들 중 몇은 당신에게 갔을 수도 있고.”


 술루가 한 장의 종이를 뽑아 탁자에 올렸다. 답 없는 술루를 두고도 그는 혼자 잘 떠든다.


 “나도 당신과 비슷한 일을 하거든요.”


 술루의 일은 상담가가 아니지만, 그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어쨌든 의뢰인의 말을 들어줘야 일이 진행되니까. 술루는 의무적으로 물었다.


 “비슷한 일이요?”

 “난 돈 받고 가이딩을 해요. 우리 같은 센티넬들이 다 비슷하죠.”


 우리 같은 ‘센티넬’이 ‘가이딩’을 한다고? 술루는 그제야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그는 유명인이다. 가이딩 능력이 있는 센티넬. 이미 1세기 전 사라진 측정법을 빌리자면, 그는 S급 센티넬이었다. 그 능력이 너무나 강해 제 자신에게마저 쓸 수 있는. 가이드나 알약 따위 필요 없이 살 수 있다는 사람. 제임스 T. 커크. 그는 직설적으로 말해서 가이딩을 명목으로 섹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으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류다. 가이딩을 대체할 수 있는 약이 나온 지 오래인데, 뭐 하러 그를 찾는단 말인가?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알약을 개발했죠.”


 술루의 얼굴에서 그런 낌새를 읽은 건지, 아니면 그저 그런 종류의 얘길 하고 싶었던 건지, 그가 말했다.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그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요. 왜겠어요?”


 술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찾아오는 거죠. 난 마다하지 않을 뿐이고.”


 좋은 변명이네. 술루가 생각했다.


 “물론 적성에 맞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가이딩 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각을 읽는 능력이 아닐까. 커크는 씩 웃고 있었다. 내 표정이 그리 읽기 쉬운 것은 아닐 텐데. 술루는 그가 더 말을 꺼내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 온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니겠군요.”


 그는 딱히 제 직업에 불만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인생에 불만이 있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우울한 사람은 더더욱 아닌 듯 보였다. 물론 이런 것들은 고작 몇 분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지만, 술루는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 능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술루의 능력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와, 완전히 몇 백 년 전 물건이네.”


 술루가 품속에서 만년필을 꺼내자 그는 놀란 얼굴이었다. 술루가 머쓱한 투로 말했다.


 “정확하게는 2세기 전입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좋아해서요.”

 “알아요. 내가 말했잖아요, 듣던 대로라고. 난 종이를 처음 봤어요. 당신이 이런 걸 쓴다고는 들었지만.”


 술루의 손에 집힌 만년필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가 문득, 술루와 눈을 마주쳤다.


 “난 골동품 좋아하는 사람 좋아해요.”


 당최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다. 술루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뭔가요?”

 “아!”


 그는 방문 목적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퍼뜩 소리를 지르더니 하하 웃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칼이 몇 가닥 이마로 내려와 앉았다.


 “별 거 아니에요. 그냥 티눈이 있었단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예?”


 술루는 다시 물었다. 그가 머리칼을 다시 쓸어 올리며 말했다. 답은 똑같았다.


 “티눈이 있었다는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요.”



* * *



 그의 의뢰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손바닥에 작은 티눈이 있었는데 간이 병원에 가기가 귀찮아서 며칠 두었다고. 그렇지만 손바닥에 있던 탓에 뭘 하든 거슬리는 그 티눈을 결국에는 없앴는데, 이제는 그 티눈이 있었던 자리가 허해서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술루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가벼운 이유로 거액의 돈을 내고 굳이 기억을 지우겠다고? 물론 술루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을 얼굴에도 드러내지 않았을 것 이라고는… 장담을 못하겠다.


 “읽으면서 들으세요.”


 술루가 탁자 위에 있던 동의서와 함께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 능력은 기억을 소거하는 게 아닙니다. 기억은 마인드맵과 비슷합니다. 기억이란 건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다른 기억과 이어져 있어서, 마찬가지로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다른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소파에 앉아있으면 예전에 소파에 앉아서 했던 것들이 기억이 날 테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예전에 일어나면서 했던 것들이 기억이 나는 겁니다.”


 술루는 이젠 어조마저 외운 그 문장들을 읊었다. 그는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손에서 만년필을 굴리고 있었다. 어쨌든 눈알이 굴러가는 걸 보니 종이를 읽고 있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행동부터 단어, 온갖 시각적이고 후각적인 것들… 모든 감각에 대한 기억은 이어져 있어서 다른 기억을 되살립니다.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어쨌든 확률은 존재해요. 저는 의뢰인께서 지우고자 하는 기억과, 다른 기억의 연결을 끊어내는 일을 합니다. 제가 어떤 음악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한다면 그 음악과 관련되어있는 모든 기억을 끊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면 의자에 앉았던 것과 음악과의 연결을 끊고, 노래를 선곡하는 행위와 그 음악의 연결을 끊고.”


 이쯤 되면 목이 마르다. 술루는 준비해뒀던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기억을 완전히 고립시켜 다른 기억과의 연동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때문에 이 작업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의뢰인께서 잠에든 상태여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는 불확실한 형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듣긴 한 건지 애매한 태도였다. 동의서를 읽는 그를 가만히 기다리는데, 그가 손가락 사이로 휘두르던 만년필로 문항 어딘가를 쿡 집었다.


 “3-A. 의뢰인은 의뢰에 대한 내용도 기억에서 지우는 것에 동의한다. 이건—”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잊게 해드리는 겁니다. 이곳에 왔다는 사실까지도.”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려 오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저 항목은 필수적이다. 어느 누가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술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아뇨.”


 그렇게 말했다.


 “당신을 기억하고 싶네요.”



* * *



 결국 술루는 새로운 종이를 뽑았다. 3-A 항목이 지워진 동의서. 그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언제쯤이 좋을까 하는 물음에 지금 당장이라며 신이 난 얼굴로 수면제를 삼키고는 술루가 안내하는 침대에 누웠다. 술루는 약효가 돌기까지 3분가량을 기다리다가 그의 머리 부근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10부터 거꾸로 셀 겁니다. 그가 슬그머니 웃고는 눈을 감았다.


 “열, 아홉, 여덟….”


 곧이어 그가 잠들었다.



* * *



 그는 확실히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처럼 웃는 얼굴은 처음이었고, 그처럼 가벼운 방문도 처음이었으니까. 술루는 그의 방문 이후 며칠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 손님도 가끔 왔으면 좋겠다, 하는 단편적인 감상으로 그를 떠올리곤 했다. 그것은 며칠에 한 번이 되었고, 몇 주에 한 번이 되었고, 그렇게 아주 그를 잊어갈 무렵, 그가 다시 찾아왔다.


 “당신 실력이 정말 좋더라구요.”


 그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래서 다시 왔어요.”



161007-161008

스타트렉 전력 70분. 주제. 센티넬버스,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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