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술루> au


 셀린은 아홉 살이다. 곱게 땋아 내린 머리칼은 주홍색이고, 그 끝에는 초록 리본을 달았다. 반바지에 짧은 양말과 운동화를 신은 셀린은 오늘 심부름을 나왔다. 사과 세 개가 꼭 쥔 손 안의 봉투에 담겨있었다.


 “안녕 꼬마야.”


 셀린이 뒤를 돌자 눈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다. 역광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셀린이 눈을 찌푸리고 멀뚱히 서있자 남자가 무릎을 굽혀 앉고 물었다.


 “이름이 뭐야?”

 “…셀린이요.”


 그림자가 치워진 남자의 눈은 파란색이다. 머리카락은 금색. 그리고 예쁘다. 셀린은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다 늦게 대답했다. 그가 셀린의 손에 들린 봉투를 흘끗 바라본다. “엄마 심부름 나왔니?” 남자의 말에 셀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빠 심부름?” 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웃는다.


 “착하네.”


 셀린은 그의 눈을 피했다. 어쩐지 쑥쓰러웠기 때문이다. 살짝 숙여진 얼굴이 발갛다. 등 뒤에 있던 머리카락이 앞으로 툭 떨어졌다. 운동화 밑의 발가락이 꼼질대고 있었다. “셀린.” 불린 제 이름에 셀린은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마주했다.


 “내가 부탁을 하나 할 거야.”


 셀린은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정말 쉬운 거야. 여기서 저 쪽으로 한 블록을 걸어가면 검은 머리에 회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있을 거야. 모르겠으면 이마를 봐. 이마에 점이 있거든. 그 남자한테 이것만 전해주면 돼.”


 그러더니 남자가 말한다.


 “사랑해.”


 남자는 셀린이 난생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이다. “할 수 있겠어?” 셀린은 굳게 다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셀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착하다.”


 그래서 셀린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걸어간다. 사랑해. 사랑해. 그 사람에게 이 말을 꼭 전해줘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종이봉투에 담긴 사과가 어느새 둘이 된 것도 모르는 채로.



* * *



 “……예, 여기도 수색해봤는데 별 다를 건 없더군요. …예. 그럼 거기서 합류하겠습니다.”


 술루가 통신을 종료했다. 역시나 허탕이다. 예상했던 바였다. 그는 도시를 제 멋대로 활개치고 다니는 자였다. 신원파악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이름부터 DNA까지 모조리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가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리 자유로이 나돌 수 있는 것은 그의 능력 덕이리라. 더불어 비상하며 예측할 수 없는 그의 두뇌도. 솔직히 말하자면, 술루는 후자가 그의 자유에 가장 큰 몫을 한다 생각했다.


 건물에서 나오는 그의 회색 제복을 보자 사람들이 슬그머니 비켜선다. 근무 중인 군견과 엮여 좋을 것 하나 없다. 술루도 그걸 잘 알아 제복을 입은 날이면 되도록 사람 많은 곳을 피해 다녔다. 길가에 서서 호출한 호버카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허리께를 툭툭 쳤다. 술루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어린아이다. 


 “사랑해.”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난데없는 고백에 술루가 얼굴을 굳혔다. 10살 전후로 보이는 여자아이다. 어디서 왔지? 거리를 살피는데 어떤 남자가 눈앞에서 뚝 멈추더니 말한다.


 “사랑해.”


 20대 중반 남성. 키는 약 6피트에 브루넷. 남자의 동공이 확장되어 있다. 단단히 굳은 얼굴로 술루가 분주히 눈을 돌렸다. 눈도 하나 깜빡이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걸어와 술루에게 말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술루.”

 “사랑해.”


 40대 후반, 5피트, 진저 여성. 70대 노인, 백발 남성. 10대, 블론드 여성. 그들의 명확한 출처를 알아낸 술루가 제게 말하는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모조리 기억에 넣으며 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이 다가오고, 술루를 스쳐지나간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술루. 사랑해. 술루.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최면에 걸린 듯 인형처럼 걸어와 말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들 사이엔 아무런 규칙도 없다. 술루는 어느새 해일처럼 불어난 사람들을 피해 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술루는 제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사랑해. 술루. 사랑해. 사람은 더 많아지고, 이제 술루는 인파에 파묻혀 그들을 파헤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술루가 이를 갈았다. 사랑해. 사랑해. 술루. 사랑해. 그들은 술루를 지나가며 그에게 말한다. 사랑해 술루. 미친 듯이 쏟아지는 인간의 파도에도 술루는 꾸역꾸역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간다. 사랑해.


 누군가의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술루는 한산한 거리를 마주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술루의 등 뒤로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툭. 구둣발에 무언가 걸린다. 술루는 제 발에 채인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몇 입 베어 먹은 사과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거리에서 마주친 사과를 본 그의 눈이 차갑다.


 “……제임스 커크.”


 술루는 그 이름을 씹어뱉고, 다시금 결심한다. 그를 반드시 잡고 말리라고. 입술로 샌 그의 목소리가 겨울 입김처럼 허공으로 퍼졌다.



161119-1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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